기획특집 8.15광복절

태극기 유래를 통해서 본 민족정신

국기선양회

국기는 민족혼의 정화요 민족양심의 상징이며, 민족애(民族愛)의 절대적이요, 유로(流露)인 것이다. 무릇 국가가 없는 민족에게는 「국기」가 없는 법이요, 국기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머 리 말

국기는 밖으로는 나라를 대표하는 표식이며, 안으로는 국가이념과 전통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국가와 민족을 상징하는 태극기는 한민족 정신의 배경으로서 조국수호와 국위선양의 깃발이다.

우리나라 국기는 기면(旗面) 한복판에 태극 도형을 기장으로한 「태극기」로서 태극은 동양철학의 최고 학문인 역학의 원리를 따른 것이며 우주 본체의 최고 원리인 음(陰)과 양(陽)이 상호작용하여, 끊임없이 발전해 가는 이치를 집약하여 담은 우리겨레의“얼”인 것이다.
태극기는 우리겨레의 정신과 우주가 조물주의 섭리로 생성발전하는 오묘한 이치를 가장 명료하게 잘 나타낸 것으로서, 무한히 빛나는 인류 평화를 지향하는 우리의 이상으로서 소중히 관리하고 게양함으로써 애국심을 함양해야 할 것이다.
8·15광복을 맞아 필자는 태극기의 유래를 각종 문헌을 통해 살펴보고 그 속에 배어있는 민족정신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

태극, 태극기의 유래

한민족의 신성한 뿌리 태극

나선형(螺旋形)의 태극무늬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고대의 여러 민족들간에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태극과 유사한 여러가지 도형은 미국 대륙의 인디언족 출토품과 유럽의 여러 각지에서 출토된 고대유물에서 볼 수 있으며 지중해 연안과 이집트를 거쳐 인도에 이르기까지 세계 문화 전역에서 발견되었다. 이러한 도안들은 행운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사용되었고, 이는 고대 인류의 공통된 우주관에서 이루어진 우주 생성의 과정을 상징한 직관적인 도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도형들은 여러가지 형태를 혼용하여 사용해 왔으나 우리의 태극도형은 옛날부터 원형 그대로 지금까지 쓰여져 왔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태극을 신성과 신비의 부호로 사용해 왔으나, 차츰 쓰이는 범위가 넓어져 신성보다도 길상(吉祥)과 축복의 뜻으로 쓰게된 듯 하다.
실제로 옛날에는 임금의 왕관에 태극도형의 반쪽모양을 곡옥(曲玉)으로 장식하였던 것을 점차 궁전과 사찰, 누각, 어문(衙門)등 건물을 비롯하여 거문고, 패물, 갓집, 부채, 장고, 베갯모, 숟가락, 식기 등 생활주변의 일용품에 이르기까지 아름 새겨 길상의 뜻으로 표시하였으니 이 도형은 민족과 더불어 함께 쓰여온 한민족의 신성한 부호인 것이다.
그런데 그 석재에 새겨진 태극도상을 보면, 신라의 왕관에 쓰던 곡옥(曲玉)의 형태와 같은 태극의 陰과 陽의 두쪽만을 한폭판에 새기고 태극의 좌우 양쪽에는 톱날(긴삼각형)과 같은 장방형 비슷한 무늬를 새겨놓았다.
이와같은 톱날(긴삼각형)같은 도형은 수학의 심대 난문인 원적문제를 이해하는 도형으로서 그 자체가 수수께끼의 원적(圓積)을 표시하는 도형인 것이다.
따라서 석재의 도형은 중앙의 태극 형태를 이러한 원적으로서 표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는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운행이 원(圓)으로 이루어진다는데 결부되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감은사지에서 발견된 태극도형과 그 밖의 여러가지 문체는 오래전부터 전해 온 능숙한 수법으로 새겨진 것이라는 학자들의 의견으로 보아 태극도형은 먼 옛날부터 내려온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상에서 입증되는 바와 같이 감은사 석가의 태극도형은 중국의 ‘주렴계’가 태극도실을 제창(서기 1070년에)한 후 우리나라에 유입된때(1314년)부터 632년전에 이미 태극을 사용한 사실이 고증을 통하여 잘 입증되고 있다.

감은사 기단의 태극도형

우리가 ‘태극도형’이라 부르게 된 것은 중국 주렴계(이름 돈이)가 태극도설을 발표한 뒤 정수학이 우리나라로 유입된(서기 1314년)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계로 우리나라 태극도형이 중국의 태극도설에서 기원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중국의 태극도설이 우리나라에 유입되기 632년전에 이미 우리나라는 태극도형을 조상들이 신비한 부호로 널리 사용해 왔으며, 이는 여러가지의 역사적 유물과 고증을 통하여 잘 입증되고 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30대 임금인 「문무왕」(서기 681년)은 삼국을 통일한 뒤에 동쪽바다 건너 일본의 침입을 염려하여 이를 진압코자 경상북도 경주시 악북면 용당리의 용담부락에 감은사라는 절을 짓다가 이를 끝마치지 못한채로 천명을 다하여 바다의 용이 되었다고 한다.
31대 「신문왕」은(서기 682년) 뒤를 이어 임금이 되자 부왕의 뜻을 받들고 죽어서 용이 된 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감은사의 금당(金堂) 초석(礎石) 밑에 동쪽으로 향하는 하나의 空穴을 만들어 언제나 용이 들어와서 그 속을 빙빙 돌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용이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든 독특한 구조를 가진 유서깊은 절이건만 역사의 변천속에 몇번의 병화(兵火)로 말미암아 절은 타 없어졌다. 그러나 금당기단의 동남쪽 전면에서 석재 구조의 원형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완전한 태극도형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옛날 우리민족은 조화의 상징인 용에 대응하는 신비의 부호로서 태극도형을 사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감은사지(感恩寺址)는 사적 제31호로서 경상북도 경주군 양북면 용당리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30대 문무왕이 절을 세우기 시작하여 신문왕 682년에 완성한 신라시대의 사찰이다.

고려말의 범종

1392년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진 ‘고려말범종’은 1954년 태극기도설의 저자가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오다하라시(小田原市)의 최의현에게 기증을 받아 입수한 것인데, 그의 말에 의하면 일본인 하야시(林某)가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간 것을 찾았다고 한다.
‘고려말 범종’은 감정서에 의하면 용의 머리는 파손되었으나 힘있는 굳센다리를 볼 수 있으며, 작지만 빼어난 솜씨로 태극도를 모양화하여 범종에 표현한 것이 특징이라 하였다.
이것은 역경(易經)과 불교와의 융합이며, 유교와 불교와의 이상적인 조화로서 태극도가 국가와 관련을 가졌다고 한다. 이 범종에 새겨진 태극기 도안을 보면 태극머리의 환점과 태극의 위치만 다를뿐 태극의 방향과 4쾌의 모양이 현행 국기와 흡사하다.
이 감정서는 국립중앙도서관의 태극기도설에 수록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소재불명으로 찾을 수가 없다. 본 자료는 사단법인 대한민국국기선양회가 분실전 발췌해 두었던 자료이다.

임진정왜도와 태극기

임진정왜도는 이름을 알 수 없는 明의 종군화가가 임진란 중 가장 치열했던 해전중의 하나인 노량해전을 상세하게 묘사한 병풍식의 그림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길이가 약 6.5미터이다. 그림의 장면들은 시간상으로 3개월, 거리는 약 30키로미터를 포괄하고 있는 대작이다.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는 변화는 아주 교묘하게 처리되어 있어 공간과 시간이 계속되는 느낌을 준다. 그림에 나타난 사람은 약 4천4백명으로 2천3백명 가량이 일본사람(8백84명은 시체이거나 물에 빠진 사람)이고 나머지 2천3백여명이 한국과 중국의 연합군이다.

바다를 메우고 있는 2백36척의 선박가운데 1백36척은 중국과 한국측 선박이고(최소한 9척은 한국의 선박이 분명함) 99척은 일본의 선박이다. 일본 선박가운데 53척은 바다에 있고 46척은 화염에 싸여 있거나 침몰당하고 있다. 육지에는 1백84그루의 나무, 1백96채의 건물(막사, 일반 주택, 탑, 사격대 등) 4백87개의 깃발이 점점이 산재되어 있다. 사용되고 있는 무기중에도 대포 75문, 조총 3백22정이 있고 무수한 창검과 화살이 그려져 있다.
임진정왜도는 놀랍게도 태극기가 발견되고 있는데 태극기의 출현은 중국의 선박과 일본의 선박으로부터 한국의 선박을 구별하기 위해 쓰여진 국가의 상징이었음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일본선박을 공격하고 있는 전함 가운데 선열 맨 앞에 특이한 깃발을 달고 있는 두척의 군함이 있다. 한척은 천병(天兵)이라는 깃발을 달고 있는데, 천병이란 당시 조선에 있던 중국수군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른 한 척은 태극기와 유사한 깃발을 달고 있다. 그림속에는 태극말고도 네귀퉁이에 구름의 모형이 있는데 이것은 지금의 태극기 괘(掛)와 일치한다.
당시 명의 종군화가는 천병기와 태극기로서 중국선박과 조선의 선박을 구분하려 했다. 이것은 중국 선박에 타고 있는 수군의 제복이 완연히 다른 점으로도 증명된다. 이 그림이 보여주는 증거로 보아 한국인은 오래 전부터 태극을 국기의 상징으로 사용했던 것이 분명하다.

태극기에 나타난 민족정신

기면백색은 평화의 정신을 뜻한다.
태극기의 흰색은 백의민족의 순결과 평화애호의 정신을 뜻해서 흰색 바탕에 「잡」된 것이 없는 우리나라 선조의 순백한 유토를 상징함이다.
따라서 태극기의 백색 바탕은 평화를 애호하는 「평화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태극원형은 단일의 정신을 나타내는데, 원형은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지 않은 전체 우주의 본원을 의미하며, 우주는 단 하나 뿐으로서 천지의 만상을 구성하고 있다.
하나의 원형을 취한 것은 우리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나타낸 「단일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청홍음양은 창조의 정신을 의미한다.
태극은 우주본원의 「음」과 「양」을 표시하며, 음과 양은 상대성을 뜻한다.
아랫부분 「청」은 「음」을 뜻하고 윗 부분 「홍」은 「양」을 뜻한다.
원형속의 음, 양은 상하가 화합하여 태극을 이루고 천지만물은 「음」과 「양」 의 신비한 배합에서 창조되어 「음, 양」의 이치에 따라 창조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건곤양괘는 무궁의 정신이다.
「건」괘는 하늘을 뜻하며, 기면의 왼쪽 부분에 「건」괘를 배치한다.
「곤」괘는 땅을 나타내며, 기면은 오른쪽 아랫부분에 「곤」괘를 배치한다.
「건, 곤」 양괘를 취함은 우리나라의 국운도 천지와 함께 ‘영원무궁’하자는 무궁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감리양괘는 광명의 정신이다.
「감」괘는 달을 나타낸 것이요, 기면의 오른쪽 윗부분에 「감」괘를 배치한다.
「리」괘는 해를 뜻하며, 기면의 왼쪽 아랫부분에 「리」괘를 배치한다.
「감, 리」 양괘를 취함은 우리나라가 언제든지 ‘달’과 ‘해’와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나라가 되자는 광명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음효 양효는 사괘의 모체로서 「사」괘는 실상 팔괘 중에서 건, 곤, 감, 리 괘를 채택한 것이며, 태극의 「음, 양」원리가 합치된 것이다.
하나의 괘를 형성함은 3개의 「효」가 합하여 형성되며, 「효」는 「양효」와 「음효」 이 두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양효」와 「음효」는 기면 네귀에 사괘를 구성하는 모체이다.
「태극기」는 역리학상으로 여러가지 위대한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요약 설명하면 평화, 단일, 창조, 무궁, 광명의 근본원리와 그 정신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정신과 우리 민족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태극기를 사랑하는 것이 국기에 대한 존엄성을 높이는 길이며, 국기게양은 우리 국민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로서 애국의 실천인 것이다.

오늘의 현실과 우리의 자세

이상에서 본고는 태극기에 대한 유래와 거기에 나타난 우리선조들의 숭고한 민족정신을 각종 자료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주지하는 것처럼 태극기에 대한 보존과 게양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국기는 ‘겨레의 정신’을 상징하고 그 국가의 ‘주권’을 대표하는 숭고한 표현이다. 태극기의 ‘참뜻’이 흐려짐은 곧 ‘조국애·민족애’의 퇴색이며, 국기에 대한 모독을 초래하는 것이다.

태극기는 일상적인 ‘표상물’도 가시적인 ‘자연물’도 아닌 ‘우주본체’의 최고 ‘원리’를 상징한 차원 높은 이치를 ‘집약’하여 만든 것으로서 우리 조상의 ‘뿌리’인 것이다.
따라서 태극기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를 비롯하여 모든 ‘행사’에는 항상 국기를 앞세워 단결함은 물론,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함께 하는 것임을 중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국기는 민족혼의 정화요 민족양심의 상징이며, 민족애의 절대적이요, 유로(流露)인 것이다. 무릇 국가가 없는 민족에게는 「국기」가 없는 법이요, 국기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태양이 광명의 최고목표라고 한다면 「국기」는 민족생존의 최고 목표인 것이다. 태극기를 수호하는 것이 곧 우리들의 조국을 수호하는 것이며, 올바른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에 백의의 단일민족은 건재하는 것이다.
전 국민은 「태극기」 아래 뭉쳐 자손만대의 기초를 정립하고, 태극기의 「오대정신」을 바로 인식하여, 전국 가가호호에 올바른 국기가 휘날리고, “민족혼”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만이 「남북통일」의 길이요, 민족생존의 길임을 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